설악산 논스톱 등반 고생기 [한계령-대청-백담사]

 몇년 전에 한창 산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일하는 날 빼고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무조건 서울에 있는 산을 다녔고, 몇 달 산에 다니다 보니 처음과는 달리 숨도 별루 차지 않고, 더 힘든 산을 가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고,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네이버와 다음 까페에서 산악회를 검색 하던중 다음에서 마음에 드는 산악회 까페를 발견 했고, 타겟은 케이블카 타고 두어번 다녀 본 설악산으로 정한 후, 같이 산을 다니던 친구몫까지 내가 돈을 내고 신청을 했다. (훗날 일생일대의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알고, 경솔한 선택에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오후 11시에 사당역에서 전세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날 오전 3시에 한계령(해발 1004M)에 도착하였고 동일 오후 4시에 하산 완료를 하여 총 1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설악산님과 사투를 벌였다.


 산행코스는 한계령 - 한계령 갈림길 - 서북능선 - 대청봉 대피소 - 봉정암 - 백담사였다. 그 해에만 서울의 산이란 산은 코스를 달리 하며 섭렵을 했다고 생각을 했고, 어지간한 산은 이제 문제 없겠다. 싶었는데, 오산이었다. 설악산은 어지간한 산이 아니었다. 


설악산 등반 코스


 사실 내가 설악산을 좀 우습게 본 이유는 데이터를 봤기 때문이다. 대청봉의 높이가 1,708M 였고, 출발지인 한계령 해발 높이 1,004M를 빼면 실제 등산 높이는 704M였다. 이 정도면 자주 다니던 북한산과 높이가 큰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가뿐하게 올라 갔다가 내려 오면 된다는 상상을 했는데 얼마나 험악하던지 대청봉을 700M눈앞에 두고 무릎이 너무 아파서 대청봉 대피소까지만 찍고 쉬다가 하산하였다.


 아쉽기는 하였지만 실제 거리 약 23Km, 13시간의 설악산 산행을 완료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겠다. 나의 첫 명산 산행이자 마지막 산행이 되었다. 


 혹시 나처럼 산행 다닌지 1년도 않되었는데, 좀더 높은 산을 갈구 하는 사람들, 설악산만은 피하길 바란다. 후회 한다. 


 그래도 올라갈 이들이 있을 테니 지금부터 설악산 등반 핵고생기를 적어 보겠다. 


 새벽 3시에 한계령에 도착하니 순록의 눈을 번쩍 띄게 하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간단한 등산 장비와 따끈한 어묵과 김밥, 라면을 팔았다. 입구에는 화장실도 있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화장실이 없으니 꼬옥 들렸다 가는 것이 좋겠다.)


 깜깜할 때 산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라 열심히 몸풀고 스틱 펼치고, 장갑 끼고 모자 쓰고, 헤드랜턴 착용하고 등산을 시작하였는데 처음 맞아주는 것은 약 30분간 인위적으로 만든 돌계단과 나무 계단 길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산행길에서 특히나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계단이다. 산의 경사도에 맞추다보니 건축법의 계단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내 무릎 높이의 단도 있다.


 등산전에 충분한 워밍업과 특별히 무릎과 발목 종아리의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주는 게 좋겠다. 설악산은 지대가 높아서 새벽에는 항상 운무가 끼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므로 추운 날은 두말할 것도 없고 여름에도 방풍용 자켓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운무에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혀 떨어질 정도이므로 산을 오르는 도중에는 몸에서 나는 열로 인해 괜찮지만 쉴 때는 방풍의를 입어 열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계단 길이 끝나고 나서 부터 설악산이 진정한 '악산'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첫 째로 몇년이 지나서 다시 묘사하기에도 짜증이 날 정도로 돌이 많다. 사람들이 정성들여 구축한 계단돌, 자연적으로 생겨난 부정형의 돌, 공기돌로 써도 될만한 조약돌류의 잔잔한 돌 등 정말 오를 때부터 내릴 때까지 거의 돌이 지천에 깔려 있다고 보면 된다.


 인공적인 계단처럼 차라리 높이가 일정하다면 좀 걷기 편하겠지만 이 돌들은 밟을 때마다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쌍 스틱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무릎에 부담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위에 말했듯이 나처럼 서울에 있는 잔잔한 산에만 다녔던 사람들은 충분한 준비 운동, 스트레칭을~~해야 고생을 덜할 것 이다.)


 중반쯤 오르면 완만한 비탈길인데 이게 또 사람 힘들게 하더라. 경사도는 별로 없는데 계속해서 경사가 이어지니까 가파른 깔딱 고개를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 약한 경사길 우습게 보지 말고 보폭을 줄여서 여유로운 속도로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나처럼 야간 산행이 처음일 경우에는 평소 페이스의 80%의 속도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계령 대청봉 코스는 변화무쌍한데 반해 이정표가 별로 없다. 나도 어두워서 헤드렌턴에만 의지한 시각으로 대 여섯번은 길을 잘 못 들었던 거 같다. 나 처럼 길을 헤메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각종 산악회에서 붙여 놓은 리본이나 교통 표지판처럼 불빛이 닿으면 빛나는 표식들을 사람들이 붙여 놨는데 이 이정표를 잘 보고 다녀야 한다. 다음 간이 표지는 고개를 돌려서 딱 아쉬울만할 때 하나 나온다.


 이래저래 오르다 보니 해는 6시 쯤에 뜬 거 같은데 운무도 심하고 해 자체는 반대편 산에 가려서 헤드랜턴 없이도 다닌 것은 40분이 지난 6시 40분 경이었다.


 렌턴을 끄고 산세를 보니 절경이긴 했다. (사진은 힘들어서 거의 찍지 않았으니 다른데 검색) 대청봉에 다 와갈 무렵 무릎에 통증이 심해 지기 시작했고 한계령 - 대청봉 구간이 전체 산행 길이의 1/3 인 점을 감안해 보면 대청봉을 찍지 않고 소청을 통해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같이 갔던 친구는 좀 힘내서 대청봉까지 가보자고 했지만,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대청봉대피소~대청봉까지 왕복 1.4Km는 하산 때 매우 힘들 거 같았고, 끝까지 안 간다고 해서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대청봉 대피소서 찍은 딱 한장의 사진을 봐도 확실히 얼굴에 여유가 없다. 


 지금까지 친구랑 산에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진 않아도 웃으면서 즐겁게 찍었는데, 전혀 웃음기가 없다.(아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날만큼 힘겨운 순간이 떠오른다.) 대청봉 대피소에서 소청 대피소로 내려가니 탁자가 약 5개 정도 있고 산악회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도 대청봉을 찍고 내려와서 말이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옆에 앉았던 회원 분이 같이 밥을 먹자고 해서 합석을 했는데, 이때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울에 있는 산만 다니면서 취사 금지 인 줄로만 알았는데

회원 한 명이 코펠을 꺼내고 돼지고기랑 오징어 고추장 볶음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날 닭강정과 김밥을 샀는데, 꺼내지도 못했다.)


 고기에 밥을 얻어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후라이팬은 치우고 냄비를 꺼내더니 물을 붓고 라면을 꺼내는데 (후미 산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줄 이야~) 와 설악산에서 라면 먹는 구나' 라고 생각하던 찰라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라면 끓이던 회원이 가방에서 봉다리 하나를 꺼내 들며 '짜잔~'이라는 자체 효과음을 냈다. 봉다리를 바라 보는데 글쎄 반토막 난 꽃게의 시체가 여섯 개 보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설악산 정상에서 라면을 끓이는 것도 생소하고 좋은데, 거기에 꽃게라니~그 맛은 상상에 맡기겠다.


 참고사항 : 지방에 높은 유명 산들은 보통 대피소가 있고, 이 대피소에서는 취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명산에 오르기 전에는 이런 정보들을 한번 검색해 보는 것이 좋겠다. 


 밥 먹으면서 맥주 한캔 따니, 살짝 신선놀음 하는 듯하였으나, 소청~백담사까지 하산길 11.6Km였던 거 같은데, 산을 오르는 만큼, 아니다 조금 더 고행길이었다.


 약 5시간이 좀 넘는 등산 도중에 무릎은 계속 통증을 주었고, 기나긴 걸음으로 다리 쪽에 젖산이 많이 쌓여 피곤했다. 하산도중에 한 3번은 드러누워 약 10분정도씩 쪽잠을 잔거 같다.


 그래도 어찌 어찌 발걸음을 계속 옮기다 보니 백담사에 오후 4시에 도착했고 장장 13시간, 23Km구간의 설악산 산행을 마쳤다.


 백담사 입구에 버스가 있는데 이게 좀 괘씸한 느낌이 든다. 약 15분 거리인데 어른 요금이 2,300원이다. 금액도 괘씸한데 마을 주민들 독점이다. 더 괘씸한 건 일반 자동차는 백담사 입구로 못 온다는 것이다. 이 버스가 내려주는 곳에 주차장이 있어 거기에 차를 세우고 백담사로 들어오거나 나가려면 이 버스를 타고 가거나 약 1시간 30분을 걸어가거나 양자택일이다.


(뭐 사업적인 측면으론 기가 막힌다. 3000원을 버스비로 책정 해도 마음 속으로는 욕을 할지언정 타고 내려가게 될 것이다.)


 위의 이유 외에 버스가 더 괘씸한 것은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데도 하절기 오후 6시, 동절시 오후5시 퇴근이다. 설악산 등산 계획하는 님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백담사로 내려온 순간 그대 님들 다리는 거의 맛이 갔고 아까 말한 주차장까지 1시간 30분을 걷는다는 것은 레알 지옥 길이다.


 '꼬불꼬불한 길에 보행로가 없다.'는 전설이~~ 있다. 하산 시간은 이 버스 시간을 기준으로 역산하는 게 좋겠다. 만약에 같이 간 산악회가 오전 5시 넘어서 똑같은 코스로 내려 왔다면, 밖으로 나가는 버스가 없기에 90분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미리 정해진 식당으로 가니 산악괴 27명의 회원 중 나와 내 친구가 맨 꼴찌로 도착했다.


 황태 해장국에 소주 너 댓잔하고 고속버스에서는 앉자마자 夢國(=꿈나라)를 찾았고 중간의 휴게소 10분 깬걸 제외하고는 계속 잤다. 집에 와서 냉수로 무릎을 몇 십분동안 찜질 하고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걱정 했던 거보다는 몸이 덜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개뿔이나 한달 동안 설악산 등반 후유증으로 절다시피 다녔다. 


 설악산 산행 후 산악회 회원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나는 애초부터 힘들만한 산행을 시작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0시간 넘는 산행을 해보지 않았고, 근력이 딸리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신었던 등산화가 단기 산행용이란다. 릿지화라고 해서 암벽 오르는데 특화 되어 있고 밑창이 말랑말랑 해서 7시간 넘는 등산에는 부적합 한 신발이라고 했다. 충격 받았다. 

 

 (분명 등산화 처음 살 때, 점원이 내가 뭐를 집으면 단기, 장기 어쩌구 저쩌구 했던 말이 기억은 난다. 그때 산알못인 내 머리속에는 아 1일 이내의 산행용 단기 등산화와, 1일 초과하는 몇일 짜리 산행용인 장기 등산화가 있구나 하고 지나쳤던 거 같다.)


 10Km가 넘는 구간의 산행은 발바닥이 두꺼운 장기 산행용을 신어야 좀 더 편하게 등산할 수 있단다.

밑줄 쫘악~ 이 글을 쓰면서도 다짐을 하게 된다. 앞으로는 이런 긴 산행(5시간 이상) 및 '악'자 들어가는 산은 절대로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한계령 - 대청 - 백담사 코스는 1박 2일 코스로 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1일째는 대청을 찍고 소청 대피소에 미리 연락을 하면 숙박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소청에서 1박 후 그 다음날 하산 하는 코스가 적정한 상행 코스라고 한다. 이걸 누가 알았냐고요.


 '설악산 형님' 그 때 오르기 전에 형님을 얕 잡아봐서 쏴리 합니다. 그대는 진정한 '악' 산이었습니다. 형님이 새겨준 힘듦은 팔을 올리기 힘든 것과, 걸을 때마다 종아리>무릎>허벅지로 전해지는 고통으로 몸속에 꽉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도 좋은 점 몇가지 들어 보자면 명산이라고 불릴 만한 절경들이 요소 요소에 정말 많다. 나야 뭐, 좋은 건 머릿속에 1~2초고, 감동이 오래가지 않는 체질이지만 경치는 핸드폰 사진기로만 찍기에는 좀 아쉬울 정도이니 사진기 꼭 들고 가는 걸 추천 한다. 사진 배경 제대로 나오는 포인트가 30 개소 정도는 되는 것 같다.


 13시간의 산행 동안 찍은 사진은 대청봉 대피소 앞에서 달랑 한장이다. 그 때는 사진이고 나발이고 1초라도 빨리 이 무서운 산을 내려 가서 다리를 쉬게 해 주고싶은 생각만 들었다. 설악산은 운무가 많이 껴서 정상쪽에서 뒷산을 깨끗한 배경으로 찍기는 힘들다고 한다.



 하산 길에 친구가 뒤에서 찍은 사진 돌무데기가 보이는가? 저정도 배열의 돌길이라면 준수한 거다. 아 저 돌만 다시 봐도 무릎이 애려 온다. 내가 생각 할 때는 '설악산'의 진정한 이름은 '설암산'이 맞다고 본다. 


P.S 지방의 명산을 오르기 위한 팁 몇 가지다.


1. 서울에 있는 산과 달리 해발 고도가 낮아도 험준하니, 충분한 하체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2. 높이가 높으면 운무가 많이 끼니 여름에도 꼭 바람막이용 방풍의를 챙기자


3. 10Km가 넘은 장기 산행은 장기산행용 등산화를 준비 해서 신는다


4. 스틱을 꼭 챙기자(그대 님이 젊은가? 그래도 챙겨라 무릎 나가는 거 우습다.)


5. 산행 초입에서 스태미너 조절을 위해 처음 1~2시간은 기본 속도의 70~80%만 내자.


6. 명산들은 보통 대피소가 있고, 이 대피소에는 취사를 할 수 있다. 또한 대피소에는 물이 나오니 물은 적당히 들고 올라가서 이런 대피소에서 보충하면 좀 더 수월한 산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나는 길에 암자나 절이 있다면 이 또한 물보충을 할 수 있다. 산에 오르는 대도 공부가 필요 하다.


7. 산이 험할수록 핸드폰은 기지국 찾기가 어렵기에 배터리가 금방 소모 된다. 꼭 예비 배터리를 챙기자. 그리고 산에 오르는 동안은 핸드폰은 잠시 꺼두고, 필요할 때 켰다가 껐다가 하는 게 좋겠다.

(기세등등하게 하던대로 블루투스 스피커에 핸드폰으로 노래 틀다가 4시간도 안되서 배터리 나갔다


8. 양말은 발바닥이 두꺼운 것을 준비 한다.


9. 나와 같은 코스로 가거나 역으로 간다면 밥은 대청 봉대피소 말고(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소청 대피소에서 먹기를 권한다. (매우 한적하다.) 대청봉 대피소 혼잡도가 100이라면 소청 대피소는 30 정도다. 아 그리고 이 대피소에서는 간이 매점도 있다. 대충 생각나는 게 물, 음료수, 라면(생라면), 아이젠, 스틱 따위를 판다.


10. 5~6시간을 뛰어넘는 산행시에는 무릎 보호대를 하는 게 좋겠다.(스틱이 있더라도) 많이 걷는 것 자체가 무릎에 무리가 많이 온다.


11. 한번 더 강조하지만 '설악산'은 피하길 핵 강추 한다. 


단풍놀이 하러 간만에 북한산이나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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